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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에서 생각해 본 것들 (박상훈, 정치학자)

폴티
2026-06-20
조회수 13

정치학자 박상훈의 「6.3 지방선거에서 생각해 본 것들」 발표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치열하게 논쟁하는 정치는 어떻게 가능한지 함께 살펴봅니다.


6.3 지방선거에서 생각해 본 것들

- 박상훈, 정치학자


7. 야유나 선동 말고 정치를 해야 한다


1) 여야의 정치력 회복보다 거리에서의 대중 동원이 더 자연스러워진 시대다. 앞으로도 줄어들기보다 더 대규모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팬덤 정치는 한국 민주주의의 벗어날 수 없는 경로로 자리를 굳히게 될 것이다. 거리 시위와 삭발, 단식 등 과거 정치 밖 민중운동의 행위 양식이었던 것이 당파적 쟁점이나 권력 투쟁을 두고 더 많아졌다. 이제는 보수 쪽도 익숙해지고 있다. 한국의 정당체계는 2차원을 갖는다. 하나는 여의도의 정당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거리에서의 정당체계다. 두 정당체계의 다이내믹스가 한국 정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2) 이를 좌파 이론가들은 ‘쟁투적(쟁론적) 민주주의’로 긍정한다. 좌파 포퓰리즘으로 대응하자는 주장도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정치와 시민사회에는 합리적 논쟁이 없다. 선동과 적대, 조롱과 야유, 증오와 공격적 열정만 있다. 다원적 선호가 아니라 일방적 혐오만 동원될 수 있는 곳에서 좋은 정치나 좋은 민주주의가 자랄 수는 없다.


3) 여야든, 같은 당 안에서든 정책 논쟁이 사라진 것은 위험한 징후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시기 행정수도 이전이나 국가보안법 폐지, 박근혜와 유승민 사이의 증세 없는 복지 논쟁, 하다못해 윤석열과 한동훈 사이의 김건희 국정 개입 제어 및 채상병 특검, 의대 정원 등은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슷한 것마저도 없다. 


4) 그람시가 말한 것으로 잘 알려진 ‘파국적 균형(catastrophic equilibrium)’, 아마도 한국 정치는 이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치세력도 도덕적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채 한 편이 상황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상황, 기존의 정치세력은 신뢰를 잃었으나 새로운 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은 없는 상황, 한마디로 말해 교착 상태가 지속되고 형태를 달리해 반복되는 상황 말이다. 돌아보면 문 대통령은 운이 좋았다. 2019년 10월 한강을 사이에 두고 광화문과 서초동 집회로 한국 사회가 최대 분열되었을 때 파국의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코로나와 뒤이은 총선이 살렸다. 교착을 겨우 피해 균형을 복원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운이 나빴고 무엇보다 무능했다. 그는 정치를 이해하지 못했고, 화만 내다 신세를 망쳤다. 당은 물론 보수의 몰락도 가져왔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기회를 가졌지만, 오만했다. 실력 이상의 의석을 가졌고, 무책임하게 정치를 파괴했고 독주만 고집해 왔다. 다시 파국적 교착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 


5)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 대한 경고다. 이 대통령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인간은 나쁜 사람보다 위선적인 사람을 더 미워한다. 나쁜 사람은 나쁘기를 알기에 견제도 회피도 가능하다. 위선적인 사람에게는 그게 어렵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견제도 회피도 안 되는 위선적 인간에 대한 실망과 분노는 더 깊고 클 수밖에 없다. 국힘 쪽은 나빴다. 그 때문에 큰 시련을 겪었다. 민주당 쪽은 겉과 속이 다르다. 비판을 경청하려 하지 않는다. 이견과 반대에 공격적이다. 토론이 불가능한 정당이 되었다. 그 때문에 종류가 다른 시련이 시작되고 있다.


6) 이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정청래에게 돌리고 싶어한다. 당을 재장악하고 싶어한다. 결과가 좋을 것 같지 않다. 대통령 권력을 제한하고 절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큰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대통령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들 모두 변화가 필요하다. 


7) 루소에 따르면 "정치의 필요성"은 인간 사회가 이익과 열정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정치의 가능성"은 모든 인간이 공통의 도덕적 지향을 갖는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인간은 누구나 좋은 일,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배곯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연민을 느끼지 않는 인간은 없다. 우리는 남을 돕고 싶어 할 뿐 남을 해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득, 직업, 지역, 성별, 취향, 이념 등 모든 것에서 우리는 다르지만, 인간이 가진 공감과 연민의 감정에서 우리는 협력할 수 있다. 진보도 보수도 중도도 근본적으로는 이 나라, 이 공동체를 아낀다고 믿어야 정치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단지 개선의 방법론을 두고 다툼과 논쟁이 있다고 믿어야 좋은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 


8) 이런 기초적 공유 사실을 부정하는 언어를 사용하면 정치는 파괴된다. 정치는 ‘공존’이라는 위대한 이상에 기초를 둔다.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은 듣기에만 좋은 말이 아니라 철저하게 좋은 말이다.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고자 국교를 만들면 종교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자각에서 종교의 자유가 문명의 원칙으로 자리를 잡았듯, 정치도 하나의 옳음만 지향해서는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존엄하다"라는 사실을 생명 원리로 삼지 않으면 정치는 폭력을 부르게 된다. 


10) 상처 주고 모욕하는 말을 가진 정치가는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의 살해자다. 최소한 이 사실을 존중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정치 문화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 그런 기초 위에서 자신들의 정책이 무엇인지 논쟁해야 한다. 논쟁 없이 사안을 명료하게 할 방법이 인간에게는 없다. 논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좋은 정치가가 될 수 있다. 여야는 논쟁해야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여당이나 진보가 야당 시민, 보수 시민을 모욕하거나, 반대로 보수와 야당 역시 여당 시민, 진보 시민을 모욕하면 민주주의는 좋은 역할을 할 수 없다. 진짜 진보나 진짜 보수라면 반보수, 반진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상대보다 더 설득력 있어야 하고 더 인간적으로 실력을 갖추는 게 서로가 할 일이다. 상대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진보나 보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며 그저 무례한 집단일 뿐이다. 우월의식을 내세우거나, 고함을 지르는 것으로 무능력과 무책임을 은폐하는 단계는 지나야 한다. 


11) 경북 안동시 허승규 후보의 당선 인사는 모든 정치가의 귀감이 된다. 그는 지금껏 안동시를 이끌어왔던 전임 시의원 한 사람 한람 이름을 거론하며 존경심을 표했다. 당연히 국힘 의원들이다. 자신과 경쟁했던 후보들의 이름도 모두 거론하며 지난 선거가 배움의 기회가 된 것에 감사를 전했다. 당연히 국힘과 민주당 후보자들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가기 위해 앞으로도 배우겠다고 말했다. 당연히 국힘을 지지한 시민, 민주당을 지지한 유권자에게 한 약속이다. 조국 후보의 “국힘 제로”나 당 대표를 사퇴하며 표명한 “민주 진보”만의 편협함에 크게 실망한 사람이라면, 허승규의 당선 인사에서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정치 이성을 갖춘 진보 정치인은 그처럼 해야 한다. 보수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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