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를 새로 쓸 시간
- 김별, 아이오와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6월 3일 지방선거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혼란을 남겼다. 줄을 섰다가 발길을 돌린 시민이 있었고, 밤 10시까지 대기표를 들고
기다린 시민도 있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선거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선거는 아래 세 가지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1. 투표와 개표, 선거 관리 과정이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신뢰.
2. 선관위와 법원, 감사원 등 선거 관련 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뢰.
3. 내가 지지한 후보가 패배하더라도 그 결과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신뢰.
이번 사태는 위의 세 가지 축 모두에 균열을 남겼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행정 실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 무결성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정치학자 피파 노리스(Pippa Norris)는 선거 무결성(electoral integrity)을 선거 전 과정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운영되는 상태로 설명한다. 좋은 민주주의란 선거 당일 하루만 공정한 것이 아니라, 후보 등록부터 투표와 개표, 결과 수용에 이르기까지 선거 전·중·후 모든 과정이 민주주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절차가 실제로 공정하게 진행됐느냐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그 절차를 공정하다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절차 위에서 작동하지만, 그 절차에 대한 시민의 신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분노한 시민들은 선관위에 해명을 요구하고, 선관위 스스로 개혁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관에 자기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다. 선관위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먼저 국회는 조속히 여야 합치를 통해 공직선거법과 감사원법을 개정해야한다. 첫째,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관위가 내부 지침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바꾸는 구조를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 주요 선거 운영 기준의 변경은 외부 검토와 공개를 의무화하고, 그 근거 데이터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감사원법 개정을 통해 독립적 외부감사, 즉 제도적 견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공직선거법 개정이 선관위의 자의적 판단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라면, 감사원법 개정은 그것을 사후에 검증하는 장치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여야의 당파싸움은 용납될 수 없다. 단순한 도덕적 촉구가 아니다. 선거제도의 신뢰는 여야 모두의 생존 기반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선거를 믿지 못하는 순간, 그 피해는 특정 진영이 아니라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돌아온다. 지금은 정쟁의 시간이 아니라 입법의 시간이다.
두 번째로, 선관위는 이번 사태에 대해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대폭 낮춘 결정이 어떤 근거와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무엇인지 국민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더욱이 일부 투표소에서는 선관위가 스스로 설정한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근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선거 관리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비효율적인 제도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절차를 지키고, 그 과정을 시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한다. 따라서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과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은 이번 사태를 바라볼 때 부실선거와 부정선거를 구분할 지혜를 갖춰야 한다. 부실선거는 선관위의 행정적 무능과 판단 실패, 절차적 투명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반면 부정선거는 선거 결과 자체가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주장이다.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게 되고 해결책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부정선거 담론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실선거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개혁 요구를 음모론으로 대체하며, 정작 선관위가 져야 할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 시민의 분노가 제도 개혁이 아니라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향하는 순간, 선관위는 책임을 회피할 공간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선거 결과 수용과 제도 신뢰마저 훼손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음모론으로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부정선거 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는 언어다. 선관위의 책임을 묻고 제도를 개혁해야 할 문제를 음모론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불신만 커질 뿐이다.
1987년 6월,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직선제를 쟁취했다. 한 표 한 표를 직접 던질 권리를 위해 싸웠고, 그 권리가 공정하게 보장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6월, 우리 민주주의는 또 한 번의 시험대 앞에 서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쿠데타나 독재에서만 오지 않는다. 선거는 계속 열리는데 시민들이 그 결과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가장 깊이 흔드는 위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신의 확산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이다. 선거 무결성을 지키는 일은 선관위만의 책임도, 정치권만의 책임도 아니다.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더 나은 제도로 만들어 가는 일,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다시, 민주주의를 새로 쓸 시간
- 김별, 아이오와대학교 정치학과 박사과정
6월 3일 지방선거는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혼란을 남겼다. 줄을 섰다가 발길을 돌린 시민이 있었고, 밤 10시까지 대기표를 들고
기다린 시민도 있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행정 착오를 넘어 선거에 대한 신뢰를 흔들었다. 선거는 아래 세 가지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1. 투표와 개표, 선거 관리 과정이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신뢰.
2. 선관위와 법원, 감사원 등 선거 관련 기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뢰.
3. 내가 지지한 후보가 패배하더라도 그 결과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신뢰.
이번 사태는 위의 세 가지 축 모두에 균열을 남겼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행정 실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 무결성의 위기 앞에 서 있다.
정치학자 피파 노리스(Pippa Norris)는 선거 무결성(electoral integrity)을 선거 전 과정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운영되는 상태로 설명한다. 좋은 민주주의란 선거 당일 하루만 공정한 것이 아니라, 후보 등록부터 투표와 개표, 결과 수용에 이르기까지 선거 전·중·후 모든 과정이 민주주의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절차가 실제로 공정하게 진행됐느냐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그 절차를 공정하다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절차 위에서 작동하지만, 그 절차에 대한 시민의 신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분노한 시민들은 선관위에 해명을 요구하고, 선관위 스스로 개혁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나 자정능력을 상실한 기관에 자기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다. 선관위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먼저 국회는 조속히 여야 합치를 통해 공직선거법과 감사원법을 개정해야한다. 첫째,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선관위가 내부 지침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바꾸는 구조를 법으로 통제해야 한다. 주요 선거 운영 기준의 변경은 외부 검토와 공개를 의무화하고, 그 근거 데이터를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감사원법 개정을 통해 독립적 외부감사, 즉 제도적 견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공직선거법 개정이 선관위의 자의적 판단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라면, 감사원법 개정은 그것을 사후에 검증하는 장치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여야의 당파싸움은 용납될 수 없다. 단순한 도덕적 촉구가 아니다. 선거제도의 신뢰는 여야 모두의 생존 기반이기 때문이다. 시민이 선거를 믿지 못하는 순간, 그 피해는 특정 진영이 아니라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돌아온다. 지금은 정쟁의 시간이 아니라 입법의 시간이다.
두 번째로, 선관위는 이번 사태에 대해 보다 투명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투표용지 인쇄 기준을 대폭 낮춘 결정이 어떤 근거와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무엇인지 국민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더욱이 일부 투표소에서는 선관위가 스스로 설정한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근거가 부재한 상황에서 선거 관리가 자의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본래 비효율적인 제도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절차를 지키고, 그 과정을 시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한다. 따라서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과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투명성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유권자들은 이번 사태를 바라볼 때 부실선거와 부정선거를 구분할 지혜를 갖춰야 한다. 부실선거는 선관위의 행정적 무능과 판단 실패, 절차적 투명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반면 부정선거는 선거 결과 자체가 의도적으로 조작됐다는 주장이다. 이 둘을 혼동하는 순간, 문제의 원인을 잘못 진단하게 되고 해결책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부정선거 담론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부실선거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개혁 요구를 음모론으로 대체하며, 정작 선관위가 져야 할 책임을 흐리게 만든다. 시민의 분노가 제도 개혁이 아니라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향하는 순간, 선관위는 책임을 회피할 공간을 얻게 된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선거 결과 수용과 제도 신뢰마저 훼손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음모론으로 설명하는 순간 우리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부정선거 담론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는 언어다. 선관위의 책임을 묻고 제도를 개혁해야 할 문제를 음모론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순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불신만 커질 뿐이다.
1987년 6월,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직선제를 쟁취했다. 한 표 한 표를 직접 던질 권리를 위해 싸웠고, 그 권리가 공정하게 보장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6월, 우리 민주주의는 또 한 번의 시험대 앞에 서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쿠데타나 독재에서만 오지 않는다. 선거는 계속 열리는데 시민들이 그 결과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민주주의를 가장 깊이 흔드는 위기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신의 확산이 아니라 신뢰의 회복이다. 선거 무결성을 지키는 일은 선관위만의 책임도, 정치권만의 책임도 아니다. 어렵게 쟁취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더 나은 제도로 만들어 가는 일,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